건설기술진흥법 판례여행 스물네 번째 사례
발주청이 신기술을 설계에 반영하는 것은 의무일까 아니면 재량일까?
법무법인(유) 율촌 변호사 정유철, 한수연, 강선주
구 건설기술관리법 제18조 제4항은, “국토해양부장관은 발주청에 신기술과 관련된 신기술장비 등의 성능시험, 시공방법 등의 시험시공을 권고할 수 있으며, 성능시험 및 시험시공의 결과가 우수하면 신기술의 활용·촉진을 위하여 발주청이 시행하는 건설공사에 신기술을 우선 적용하게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구 산업기술혁신 촉진법 제17조 제1항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공공기관은 구매하고자 하는 품목에 인증신제품이 있는 경우에는 당해 품목의 구매액 중 대통령령이 정하는 일정 비율 이상을 인증신제품으로 구매하여야 한다”, 같은 법 시행령 제24조는, “법 제17조제1항에 따라 공공기관은 구매하고자 하는 품목에 인증신제품이 있는 경우에는 해당 품목의 구매액 중 100분의 20 이상을 인증신제품으로 구매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위 건설기술관리법 및 산업기술혁신 촉진법상 두 가지 규정에 따르면 발주청은 신기술이 적용된 제품에 대해 우선구매와 관련한 어떠한 의무를 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문이 생긴다.
이 사건에서, 신기술사는 △문구 △경찰장비 △환경제품 △운동기구 △교통안전시설물 등의 제조 및 판매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로, 2003. 3.경 ‘도로표지병 앵커에 이탈을 방지하는 미늘모영의 고정장치와 회전방지 돌기를 한 표지병 시공기술’을 개발하였다. 건설교통부장관으로부터 신기술(New Excellent Technology) 지정을 받았고, 2008. 7.경에는 지식경제부장관으로부터 신제품(New Excellent Product) 인증까지 받았다.
신기술사는 신기술 지정ㆍ고시 이후 00도건설본부에 신기술을 설계에 반영하여 주고, 신제품을 의무구매하여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러나, 00도건설본부는 2006. 1. 17.자 민원회신을 통하여 이를 거부하였다. 신기술사가 그 무렵 다시 같은 내용의 민원을 제기하였으나, 00도건설본부는 2006. 7. 20. 같은 내용으로 이를 거부하였다.
신기술사는 △ 우선 건설기술관리법 시행령 제34조 제4항에서 발주청은 그가 시행하는 건설공사에 신기술을 반영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00도건설본부 및 대한민국(건설교통부장관)들(이하 “피고들”)은 도로건설공사를 발주ㆍ시공함에 있어 신기술을 설계에 반영해야 함에도 이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 그로 인하여 피고들이 이 사건 신기술을 설계에 반영하였다면 신기술사가 얻을 수 있었던 이익으로서 △ 피고 대한민국은 425,222,700원을, △ 피고 00도는 235,415,862원을 신기술사에게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산업기술혁신 촉진법 및 그 시행령의 목적과 내용 등을 종합하여 보면, 위 법령이 공공기관에 부과한 인증신제품 구매의무는 기업에 신기술개발제품의 판로를 확보해 줌으로써 산업기술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국가적 지원책의 하나로 인정된 것으로서 국민경제의 지속적인 발전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공공 일반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고, 공공기관이 구매의무를 이행한 결과 신제품 인증을 받은 자가 재산상 이익을 얻게 되더라도 이는 반사적 이익에 불과할 뿐 위 법령이 직접적으로 보호하려는 이익으로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피고들이 위 법령에서 정한 인증신제품 구매의무를 위반하였다 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피고들이 신기술사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지지는 아니한다 할 것이다’라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15. 5. 28. 선고 2013다85448 판결).
법은, 발주청에 의무를 부과하면서 “우리”가 그것을 요청할 수 있는 권리도 부여하는 경우도 있지만, 발주청에만 의무를 부여할 뿐, “우리”가 그것을 요구할 권리를 주지 않는 회색지대를 규정할 수도 있다. 이런 회색지대에서는 정말 발주청만 의무를 부담할 뿐, “우리”는 아무 권리도 가지지 못한다.
회색지대에선 권리가 없다는 점,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