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여행23] 감리계약도 발주자 파산으로 종료될까?
등록일: 2023-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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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기술진흥법 판례여행 스물세 번째 사례
감리계약도 발주자 파산으로 종료될까?
법무법인(유) 율촌 변호사 정유철, 한수연, 강선주
민법 제690조는 “위임은 당사자 한쪽의 사망이나 파산으로 종료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신뢰로 맺어진 위임계약에서 일방의 경제적 사망이라고 할 수 있는 파산이 발생한 경우 위임계약은 당연히 종료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본적으로 민법상 위임의 성질을 가지는 감리계약에서도 발주자가 파산하는 경우 감리계약이 당연히 종료하는 것일까?
현실적으로만 본다면, 민법 제690조의 규정이 명확하기도 하거니와 발주자가 파산하여 감리비를 지급할 수 없다면 감리업무는 당연히 종료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사건에서는, A와 B가 공동발주자로서 1997. 6. 10. 감리사 C(건축감리, 70% 지분), D(전기감리, 30% 지분)와 사이에 ○○아파트 신축공사에 대하여, △ 계약기간 43개월 △ 계약금액 2,121,000,000원(건축감리 1,721,000,000원) △ 감리비 3개월마다 총 15회에 걸쳐 분할 지급 △ 중도해지시에 기진행된 부분은 기성에 따라 정산하기로 하는 감리계약(이하 건축감리계약만을 “감리계약”)을 체결하였다. 보증사는 위 감리비에 대해 지급보증을 하였다.
감리사는 1997. 11.부터 감리업무를 수행하여 오던 중 1998. 2. 12. A의 부도로 인하여 공사가 중단되자 보증사의 요청에 따라 감리업무를 중단하였다. 1998. 4. 14. 공사가 재개되자 감리업무를 재개하였다가 다시 1998. 11. 20. 공사가 중단함에 따라 보증사의 요청을 받아들여 재차 감리업무를 중단하였다.
감리사는 감리비 선급금 172,100,000원과, 1999. 7. 3., 8. 31., 9. 30. 세 차례에 걸쳐 A로부터 감리기성금으로 합계 86,000,000원을 각 지급받았다. A는 감리사에 대한 나머지 감리기성금을 지급하지 않은 채 2001. 6. 22. 파산선고를 받았다.
이에 대해 건축감리사인 C가 보증사를 상대로 감리비를 청구하자 보증사는 C가 발주자로부터 지급받은 선급금은 전액 감리비에서 공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과연 C는 청구한 감리비 전액을 지급받을 수 있을까?
대법원은, ‘주택건설촉진법령에 의하여 공동주택건설사업계획 승인을 얻은 사업주체는 사업계획 승인권자가 지정한 감리자와 감리계약을 체결하도록 되어 있다. 그 지정된 감리자에게 업무상 부정행위 등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사업계획 승인권자가 감리자를 교체할 수 있을 뿐 사업주체가 함부로 감리자를 교체할 수도 없도록 되어 있다.
위 법령에 따라 체결된 감리계약은 당사자 사이의 신뢰관계를 기초로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공동주택건설사업의 원활하고도 확실한 시공을 고려한 사업계획 승인권자의 감리자 지정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어서 사업주체가 파산하였다고 하여 당연히 감리계약이 종료하는 것으로 볼 이유는 없는 것이다.
또한 민법 제690조의 위임계약 종료사유는 계약 당사자 중 일방이 그 파산 등으로 신뢰를 상실하게 된 경우에 그 계약이 종료되는 것으로 한 것이어서 위임계약의 일방 당사자가 수인인 경우에 그 중 1인에게 파산 등 위 법조가 정하는 사유가 있다고 하여 위임계약이 당연히 종료되는 것이라 할 수도 없으므로, 주택건설촉진법상의 공동사업주체가 사업계획 승인권자의 감리자 지정에 따라 공동으로 감리계약을 체결한 경우 그 공동사업주체의 1인이 파산선고를 받은 것만으로 민법 제690조에 따라 감리계약이 당연히 종료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03. 1. 10. 선고 2002다11236 판결).
결국 감리계약을 단순히 발주자와 감리사 사이에 이루어지는 사적 자치의 영역으로 보거나 온전한 민법상 ‘위임’으로 보는 것이, 우리 대법원의 생각과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법적으로는 발주자의 파산만으로 감리계약이 종료되지는 않으므로 감리계약의 원만한 마무리를 위해 행정적, 절차적으로 필요한 모든 조치들은 미리미리 취해 놓아야 한다는 점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