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기술진흥법 판례여행 열일곱 번째 사례
감리사는 모든 사고에 책임을 져야 할까?
법무법인(유) 율촌 변호사 정유철, 한수연, 강선주
지금까지 대법원은 감리사에게 포괄적인 감리의무를 부과하면서, 문제가 발생한 경우 특별한 예외 없이 감리사에게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감리사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거나,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는데도 어쩔 수 없이 발생한 문제에 대해서까지 감리사에게 책임이 부과된다면 너무 억울한 일이다. 이번 사건은 바로 이런 감리사의 책임 여부가 치열하게 다투어진 유명한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지방자치단체인 발주자는 최초 설계사와 사이에 ‘분뇨’만을 대상으로 하는 처리시설 설계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런데 ‘음식물쓰레기’도 함께 처리할 필요가 생기자 설계사에게 그 검토를 요청하였다.
설계사는 △ 하나의 처리시설로 음식물쓰레기와 분뇨를 처리하는 방안과 △ 하나의 부지 내에 음식물쓰레기 처리시설과 분뇨 처리시설을 별도로 건설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발주자는 사업부지를 추가로 매입할 필요가 없는 하나의 처리시설로 처리하는 방안을 채택하여 설계사에게 이를 추가로 설계하도록 하였다. 이 과정에서 설계사는 특허공법사의 특허공법을 반영하였다.
시공사는 음식물쓰레기 처리시설 중 분리액 탈수설비 이전 단계까지의 공정은 특허공법사에게, 분리액 탈수설비 중 분리액탈수기는 다른 하도급사를 통해 시공하였다. 시공사가 이 사건 처리시설의 종합시운전을 하였는데, 분뇨 처리시설의 경우 설계 목표치에 부합하였으나나 음식물쓰레기 처리시설의 경우에는 설계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관련 전문가 및 감사원의 의견은, 기본적으로 특허공법에 따른 설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발주자는 감리사 역시 설계도서 검토 의무를 소홀히 하여 이런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한 과실이 있다며 이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하였다.
과연 이번에도 감리사는 책임을 면하지 못하였을까?
이에 대해 대법원은, ‘관계 법령에 따르면, 책임감리업무를 수행하는 감리자는 시공 전에 설계도서에 기술적인 문제가 있는지 검토하여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발주청에 이를 보고하고 설계자와 협의함으로써 이러한 기술적인 문제가 있는 설계로 인하여 발주청이 손해를 입지 않도록 하여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 그리고 책임감리업무를 수행하는 감리자가 위와 같은 주의의무를 위반하였는지는 당시의 일반적인 감리자의 기술 수준과 경험에 비추어 설계도서의 검토에 의해 설계상의 기술적인 문제를 발견하는 것이 기대 가능한 것이었는지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라고 하면서, 설계도서 검토의무 소홀은 없었으나, 시공절차 감리의무 소홀은 있었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15. 2. 26. 선고 2012다89320 판결).
즉, 일반적인 감리자의 기술수준 및 경험에 비추어 보면, 감리사가 특허공법사의 신공법에 따라 작성된 설계도서를 검토하여 핵심공정과 노하우가 누락되어 있음을 발견하고 그 설계의 오류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기는 어려웠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야 시공단계에서의 감리 책임에서는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 사건을 통해 대법원의 중요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당시 일반적인 감리사의 기술 수준 및 경험에 비추어 설계도서를 검토하여 오류를 구체적으로 지적할 수 없었다면 설계도서 검토의무 소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매우 소중한 선례를 보여준 것이다.
앞서 본 대부분의 사례에서 대법원은 감리사에 대해 엄준한 판단 기준을 제시하고 있어, 사실상 감리사가 면책을 받을 수 없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든다. 다행히 이번 사건을 통해 대법원은, ‘일반적인 감리사의 기술 수준 및 경험’이라는 기준을 통해 감리사의 설계도서 검토의무에 한계를 그어주었다.
그럼에도 이 사건에서조차 대법원은 시공감리에 있어서는 여전히 사실상 무한책임에 가까운 주의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따라서 감리사로서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최선을 다하였다고 말할 수 있는 지를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