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기술진흥법 판례여행 열세 번째 사례
감리소홀로 인해 주변에 생긴 피해까지 배상하여야 할까?
법무법인(유) 율촌 변호사 정유철, 한수연, 강선주
감리사가 감리를 소홀히 하여 손해가 발생한 경우 감리계약의 상대방인 발주자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감리사와 아무 계약관계도 없는 현장 주변 사람들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도 책임을 져야 할까?
이 사건의 경우, 시공사는 발주자로부터 A 소유의 이 사건 건물 바로 옆에 위치한 토지 상의 건물 신축공사를 도급받았다. 터파기작업은 설계도서상 35인치 구멍을 3m 이상 뚫고 철근을 조립하여 모르터(몰탈, mortar) 주입용 파이프를 밑바닥까지 꽂은 다음 구멍에 자갈을 다져넣고 파이프를 통하여 모르터를 주입하여 콘크리트 말뚝을 간격 없이 만드는 방법으로 시공하는 CIP(Cast In Place pile)공법에 의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시공사는 비용 절감을 위하여 감리자와 협의를 거쳐 설계도서와는 달리 H빔 말뚝을 180cm 간격으로 세우고 그 사이를 합판으로 막아 시공하는 목재토류벽 흙막이공법으로 시공하였다.
그러자, 인접한 이 사건 건물의 지반침하와 기울기가 급격히 진행되어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A는 발주자, 시공사 및 감리사를 공동피고로 하여 건물 균열 등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감리사가 터파기작업시에 감리업무를 게을리한 잘못이 있는 경우 시공사와 함께 공사장 인접 건물 소유자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1997. 8. 22. 선고 97다19670 판결).
위 공사 현장은 매립지로서 터파기작업으로 인해 인근 지반의 침하가 예상되는 곳이었다. 이러한 점을 반영하여 설계에 CIP공법을 사용하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시공사는 비용 절감을 위해 인근 지반 침하의 가능성을 무시하고, 설계변경을 요청하였고, 감리자로서는 설계에 CIP공법이 반영된 이유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현장도 다시 한 번 점검하여 목재토류벽 흙막이공법 정도로 가능한 곳인지를 검토하였어야 한다. 그러나, 시공사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여 설계변경을 허용한 결과, 터파기로 인해 인근 지반이 침하되었다.
터파기작업이라는 것 자체가 지하 공간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다는 점에서 항시 위험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법은 설계 전 현장 확인 등을 통해 이러한 리스크를 낮추고, 시공 전 시험 터파기 등을 통해 다시 한 번 적절한 공법을 확인하는 정도의 주의의무는 기울일 것을 기대하고 있다.
따라서, 시공사가 설계자가 반영한 터파기 공법을 보다 간이한 방식으로 변경하려고 한다면, 감리사로서는 우선 설계사가 선정한 공법이 전제로 한 지반 상태, 시공사가 확인한 지반 상태 등을 확인하여야 한다. 그리고 간이한 방식으로 충분하다는 정도의 확인을 거친 후에야 이를 승인하였어야 한다. 특히 단순히 비용 절감만을 위해 세밀한 검토 없이 변경을 하려는 것은 아닌지 보다 면밀한 주의를 기울였어야 한다.
우리 법은 감리사에게 엄청난 전문성과 큰 의무를 요구하고 있다. 과연 그러한 의무에 합당한 비용을 받고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에는 의무의 크기만이 평가된다.
계약된 감리비용 및 그 비용 산정의 기초가 된 감리인원의 수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현장들 속에서도, 설계나 시공의 잘못이 발생하는 경우,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감리사는 설계사나 시공사와 함께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또한 그러한 책임은 민사적인 부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행정처분이나 형사처벌까지 이어지기도 하며, 이제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내년부터 시행됨에 따라 사업주가 형사처벌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