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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여행9] 건축사 자격이 없는 건축연구소와 한 설계계약은 취소할 수 있을까?

등록일: 2022-08-22 조회: 4
건설기술진흥법 판례여행 아홉 번째 사례

건축사 자격이 없는 건축연구소와 한 설계계약은 취소할 수 있을까?

법무법인(유) 율촌 변호사 정유철, 한수연, 강선주

일반적으로 말하는 건축사법상 설계는 건축사만이 할 수 있다(건축사법 제4조 제1항).

그런데, 간혹 건축사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외관상 건축사사무소와 유사한 명칭 등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곳에서 건축사법상 금지된 설계까지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민법은 중요부분에 착오가 있을 때는 관련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면서, 다만 착오가 중대한 과실로 인한 때에는 그 취소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민법 제109조 제1항). 과연 위와 같이 법에서 금지된 설계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 사건에서, A는 건축학교수로서, 건축사법에 의한 건축사 자격을 취득한 바는 없고, 다만 건축디자인연구, 건축컨설팅 등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000건축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A는 00재건축조합 추진위원회와 사이에 재건축을 위한 기본설계도, 실시설계도, 기타 공사 실시에 필요한 설계도서를 작성하는 내용의 설계용역 가계약을 체결하였다. 재건축조합이 결성된 후 위 가계약이 본계약으로 승인되었다.

그런데, 위 승인 이후 재건축조합측은 드디어 A가 건축사 자격이 없고, 000건축연구소도 건축사협회에 등록된 건축사사무소가 아닌 것으로 확인하였다.

재건축조합은 건축사 자격이 없는 A가 이 사건 계약을 체결한 것은 건축사법 제4조, 제23조에 위배되어 재건축사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재건축조합측의 착오를 이유로 설계계약을 취소하였다. 과연 이 설계계약은 민법상 착오에 의한 취소 조항의 적용을 받아 적법하게 취소될 수 있을까?

대법원은, “아파트 설계용역에서 건축사 자격이 가지는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재건축조합이 건축사 자격이 없이 건축연구소를 개설한 건축학 교수에게 건축사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재건축조합만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볼 때 일반인으로서도 이와 같은 설계용역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므로, 재건축조합측의 착오는 중요 부분의 착오에 해당한다”라고 판단하였다(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2다70884 판결).

건축사 자격이 없는 사람이 한 설계는 그 내용을 신뢰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실제로 사용할 수도 없는 것이어서 관련 설계계약은 중요 부분에 착오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건축설계업을 하는 건축연구소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건축사 자격이 있다고 믿게 될 것으로도 보인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러한 내용들을 인정하여 재건축조합이 설계계약을 체결하게 된 의사표시에 중요 부분에 착오가 있고, 그러한 착오에 중대한 과실이 없으므로 이를 취소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설계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건축사 자격이 없는 자와 체결한 설계계약은 중요 부분에 착오가 있는 것으로 취소할 수 있다. 또한 그 외관상 건축사사무소 또는 이와 유사한 명칭을 가지고 있는 자와 체결한 계약에는 충분히 오인할 만하기 때문에 그러한 오인에 중대한 과실이 없을 수 있다.

다만, ‘착오에 중대한 과실’이 있는지 여부는 개별 사실관계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항상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상당한 금액의 설계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건축사 자격을 확인해 볼 필요도 있다고 판단될 여지도 있다.

따라서, 모르고 이미 계약을 체결하였다면 어쩔 수 없이 그 취소를 주장해 볼 수밖에 없지만, 아직 계약을 체결하기 전이라면 건축사 자격 등을 꼭 확인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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