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기술진흥법 판례여행 다섯 번째 사례
건축설계 우수현상광고에서 1등을 하면 설계계약이 바로 체결되는 것일까?
법무법인(유) 율촌 변호사 정유철, 한수연, 강선주
정식으로 설계계약을 체결하기도 전에 발주자와 다툼이 생기는 경우들이 있다.
이 경우, ‘계약서’가 체결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발주자에게 어떤 청구를, 어떻게 할 수 있는가가 문제된다. 이번 사건은 입찰과 유사한 형태인 우수현상광고를 통해 그 실마리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사건에서, 발주자는 1993. 6. 6. 건물 신축 등 공사(이하 “이 사건 공사”)에 관한 설계를 공모하면서 최우수작으로 판정된 자에게 공사에 관한 ‘기본 및 실시설계권’을 부여하기로 하였다. 설계사는 위 공모에 응모하여 최우수작으로 선정되었다.
이후 설계사는 발주자의 일부 설계변경요구를 받아들여 새로운 설계도면을 작성한 다음, 평당 건축비를 250만 원으로 예상하여 산출한 설계 및 감리 비용에 관한 견적서를 발주자에 제출하였다.
그런데, 발주자측 건축심의위원회는 추가적으로 일부 설계변경을 하고 평당 건축비가 150만 원에서 200만 원을 넘지 않도록 하라는 의견을 붙여 심의를 통과시켰다. 설계사는 위 설계변경 요구를 반영하여
설계도의 일부를 변경하였으나 그 후에도 설계사와 발주자 사이에는 설계대금에 관하여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설계계약이 체결되지 못하였다.
발주자는 다시 설계사에게 ‘평당 건축비 180만 원을 기준으로 할 때 건축사 업무 및 보수기준에 따른 설계 및 감리비가 6,000만 원 정도에 불과하지만, 건축주의 선택사양으로 2,000만 원을 추가하여 합계 8,000만 원을 지급할 의사가 있다’는 내용으로 통지를 하였다.
이에 설계사는 ‘평당 건축비 200만 원을 기준으로 할 때 설계비 5,926만 원, 감리비 1,975만 원, 관련 건축도면 작성비용 1,267만 원 등 합계 9,168만 원이 대금으로 정하여져야 한다’고 회신하면서 발주자측 안을 거절하였다.
그러자, 발주자는 1993. 11. 17. 같은 달 20일까지 발주자의 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설계사가 이 사건 공사에 관한 설계계약을 체결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고 통보하였다.
설계사는 위 기간까지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고, 이 사건 공사계획은 발주자 담당자의 인사이동과 건축자금의 마련이 용이하지 않은 점 등으로 현재까지 유보된 상태이다.
결국 설계사는, 자신이 이 사건 우수현상광고에 응모하여 최우수작으로 판정되고 그 보수로서 이 사건 공사에 관한 기본 및 실시설계권을 부여받음으로써 공사에 관한 설계계약이 이미 체결된 것이고, 설계사는 그 설계계약에 따라 이 사건 공사의 계획설계와 기본설계를 실시하였으므로, 발주자는 그 계획설계비 및 기본설계비의 일부인 57,540,000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며 소송을 제기하였다.
대법원은, 우선 ‘건축설계 우수현상광고에서 당선자가 보수로서 받는 ‘기본 및 실시설계권’이란 당선자가 광고자에게 우수작으로 판정된 계획설계에 기초하여 기본 및 실시설계계약의 체결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 것이다’고 판시하여(대법원 2002. 1. 25. 선고 99다63169 판결), 설계계약 자체가 체결된 것으로는 보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광고자로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당선자가 계약의 체결을 청구할 경우 이에 응할 의무를 지게 되어 당선자 이외의 제3자와 설계계약을 체결하여서는 아니됨은 물론이고, 당사자 모두 계약의 체결을 위하여 성실하게 협의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하여, 당선자가 설계계약의 체결을 요청할 경우 당선자는 이에 응하여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만약 광고자가 일반 거래실정이나 사회통념에 비추어 현저히 부당하다고 보여지는 사항을 계약내용으로 주장하거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공사를 추진할 수 없는 등으로 인하여 계약이 체결되지 못하였다면 당선자는 이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다’라고 판시하여 광고자측 책임으로 계약이 체결되지 못하는 경우 광고자가 당선자에게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는 점도 명확히 하였다.
결국 대법원은 설계사가 받은 보수인 ‘기본 및 실시설계권’을 이미 설계계약이 체결된 것과 동일하게 볼 수는 없지만, 그와 유사한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광고자인 발주자에게 계약체결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해야 할 의무를 부여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에는 손해배상 책임까지 지도록 하였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는 당선자인 설계사가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 한, 발주자인 광고자는 당연히 설계사의 계약 체결 요청에 응하여야 하는 것이다.
다만, 이 사건에서는 위와 같이 설계사 승소 취지로 원심 판결이 파기환송되어 다시 고등법원에서 재판이 진행되었는데, 발주자측이 설계계약 관련 청구권이 3년의 시효에 걸려 소멸하였다는 주장을 하고, 이 주장이 받아들여져 설계사는 끝끝내 패소를 하게 되었다.
1997년에 시작되어 최종 2005년에 확정될 때까지 무려 8년이나 다툰 이 사건을 통해 설계우수현상공모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아무리 권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3년간 쓰지 않으면 없어진다는 소멸시효의 법리, 바로 이 소멸시효가 항상 문제될 수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겠다.